느낌 아카이브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네가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이

that.you.feel 2023. 3. 22. 21:36

넌 기억의 천재니까 기억할 수도 있겠지
네가 그때 왜 울었는지, 콧물을 책상위에 뚝뚝 흘리며 
막 태어난 것처럼 너는 울잖아
분노에 떨면서 겁에질려서 일을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네가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는 날이면
세상은 자주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투리 같고, 그래서 우리는 자주 웃는데 그날 너는 우는 것을 선택하였지.
네가 사귀던 애는 문밖으로 나가버리고 
나는 방 안을 서성거리며 
내가 네 남편이었으면 하고 바랐지. 
뒤에서 안아도 놀라지 않게.
내 두 팔이 너를 안심시키지 못할 것을 다 알면서도.
(중략)
네 뒤에 서서 얼쩡거리면
나는 너의 서러운 뒤통수가 된 것 같았고
그러니까 나는 몰라
네가 깔깔대며 크게 웃을 때
나 역시 몸 전체를 세게 흔들 뿐
너랑 내가 웃고 있는 까닭은 몰라
먹을 수 있는 걸 다 먹고 싶은 너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오리발 같아 도무지 신용이 안가는 너는, 나무 위에 올라 큰 소리로 울었지
네가 만약 신이라면
참지 않고 다 엎어버리겠다고
입술을 쑥 내밀고
노래 부르는
랑아,

너와 나는 여섯 종류로
인간들을 분류했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아
막 박수치면서,
네가 나를 선한 사람에
끼워주기를 바랐지만.
막상 네가 나더러 선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나는 다른게 되고 싶었어. 이를테면
너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
나로 인해서
너는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
어느 날 네가 또 슬피 울 때, 네가 기억하기를
네가 나의 자랑이란 걸
기억력 좋은 네가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얼쩡거렸지

-김승일, 나의 자랑 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