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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낮의 섹스

that.you.feel 2023. 11. 9.
하나코는 모른다. 이 때 나는 확신했다. 
한 남자와 인생을 공유할 때의, 흔해빠진 일상에서 길어올리는 행복,믿지 못할 기적같은 순간의 축적
예를 들면 겨울 아침, 다케오 옆에서 당연한 일이듯 눈을 뜨는 것. 차가운 발을, 건장하고 따스한 생명력에 넘치는 다케오의 발에 휘감을 때의 안심감. 뿌연 유리창.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몇 분.
예를 들면 역에서 거는 전화.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다케오의 목소리. 드러누워 열심히 추리소설을 읽고 있던 나는, 그 순간, 모든 것을 떠올린다. 만남에서 그때까지의 모든 것을.
예를 들면 일요일 낮의 섹스. 신나게 늦잠을 자고 깨났다가 몇 번이나 권태로운 섹스를 하고 그대로 잠들어버린다. 다시 눈을 뜨면 저녁이고, 둘 다 배가 고파 어쩔 줄 모른다. 그래서 동네 메밀국수 집에 간다. 
선반 위에 놓인 텔레비전, 얇게 먼지 낀 복인형, 턱을 괴고 있는 다케오의 소매 끝이 닳은 가죽 점퍼, 따끈따끈한 메밀국수 삶은 물.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넉넉함.
하나코는 모른다. 바란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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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Experiemental photography 
Painting with the light of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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