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아카이브90 아, 그게 정말 끝이였구나 무언가가 시작되고 무언가가 끝난다. 대부분 시작은 알겠는데 끝은 대체로 모른다. 끝났구나, 했는데 또 시작되기도 하고, 끝이 아니구나, 했는데 그게 끝일 수도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 그게 정말 끝이였구나, 알게 될 때도 있다. 그 때가 가장 슬프다. -황경신, 그 때가 가장 슬프다 -photo by ƒenk 느낌 아카이브 2023. 3. 22. 더보기 ›› 지금보다는 훨씬 덜 쓰라리기를 기대하며 사실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른이 되는 것은 과연 어떤 건지,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어쩌다 보니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어버렸고, 몸은 조금씩 노화의 징후를 보이는데, 마음은 여전히 말랑해서 작은 스침에도 쉽게 상처가 난다. 이적의 노래처럼 아직은 내 앞에 놓여 있는 삶의 짐이 버겁고 두려울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스무 살의 나와 지금의 나, 분명 지금의 나는 스무 살의 나보다 나 자신을 덜 아프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갖지 못한, 잘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담담히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조금씩, 나 자신과 세상과 화해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마흔이 되어도 쉰이 되어도 여전히 성장통은 있을 테지만, 지.. 느낌 아카이브 2023. 3. 22. 더보기 ›› 술로 데워진 그의 마음은 술로 데워진 그의 마음은 유쾌했고, 따뜻했으며, 또한 슬프기도 했다······. 걸어가면서 그는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자주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가를 떠올리고 이런 만남 뒤에는 추억만이 남겨질 뿐임을 안타까워했다.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 느낌 아카이브 2023. 3. 22. 더보기 ›› 모든 게 꿈결처럼 가벼웠다 예전에는 새로운 만남이 급작스럽고 거침없기 일쑤여서 사람과 사람이 어린 시절 타던 유원지 범퍼카처럼 길에서 서로 맞부딪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잃어버린 수첩, 전화 속 목소리, 카페에서의 만남... 그래, 모든 게 꿈결처럼 가벼웠다. -파트릭 모디아노,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Quentin de Briey 느낌 아카이브 2023. 3. 22. 더보기 ›› 목요일이 지나면 금요일이 올 것이다 월요일 오전에는 주문을 하고 화요일에는 온종일 주문을 걸었다. 수요일에는 기다렸다. 내일을 모레를 날이 맑았다가도 흐리듯 저녁이 있다가도 없듯 목요일이 지나면 금요일이 올 것이다. /오은, 일주일 /© JT Mills 2017 jtmportland 느낌 아카이브 2023. 3. 22. 더보기 ›› 한마디 한마디를 듣기 위해 종일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 이훤, 어떤 날 느낌 아카이브 2023. 3. 22. 더보기 ››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네가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이 넌 기억의 천재니까 기억할 수도 있겠지 네가 그때 왜 울었는지, 콧물을 책상위에 뚝뚝 흘리며 막 태어난 것처럼 너는 울잖아 분노에 떨면서 겁에질려서 일을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네가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는 날이면 세상은 자주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투리 같고, 그래서 우리는 자주 웃는데 그날 너는 우는 것을 선택하였지. 네가 사귀던 애는 문밖으로 나가버리고 나는 방 안을 서성거리며 내가 네 남편이었으면 하고 바랐지. 뒤에서 안아도 놀라지 않게. 내 두 팔이 너를 안심시키지 못할 것을 다 알면서도. (중략) 네 뒤에 서서 얼쩡거리면 나는 너의 서러운 뒤통수가 된 것 같았고 그러니까 나는 몰라 네가 깔깔대며 크게 웃을 때 나 역시 몸 전체를 세게 흔들 뿐 너랑 내가 웃고 있는 까닭은 몰라.. 느낌 아카이브 2023. 3. 22. 더보기 ››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이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Sunset - The University of Queensland, Brisbane, Australia #2 느낌 아카이브 2023. 3. 22. 더보기 ›› 사랑은 너에게 어떻게 왔던가 그리고 사랑은 너에게 어떻게 왔던가 사랑은 너에게 어떻게 왔던가, 빛나는 햇살처럼, 아니면 우수수 지는 꽃잎처럼 아니면 기도처럼 왔던가, 말해다오 / R.M 릴케,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던가 느낌 아카이브 2023. 3. 22. 더보기 ›› 시작은 서글픔이었다 시작은 서글픔이었다. 옛 사진을 발견할 때, 익숙한 향수 입자가 코의 점막에 닿을 때, 한 시절 곁에 뒀던 노랫말이 울릴 때, 잊었던 감각이 풀풀 살아나 느끼는 흔한 애처로움. 그 해 늦여름은 농밀한 습기와 불꽃놀이의 화려함으로 기억 한다. 그런 종류의 들뜸과 낙관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던 독특한 감정이다. 1993년 나는 세상의 중심에 있었다. 그곳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나의 인식을 세상과 미래로 확장해 주는 장소였다. /이지원,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_93'대전 엑스포 /Rudberg - Coastal Landscape 느낌 아카이브 2023. 3. 22. 더보기 ›› 윤종신의 유언장 윤종신의 유언장 새소리와 함께 밝게 떠오르는 태양이 있는 아침 남들은 새로운 다짐을 하고 활기차게 하루를 준비하는 아침에 나는 유서를 쓰고 있습니다. 천성이 게으르고 뒷심이 부족해서 그럭저럭 고만고만 있으나 없으나 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학창시절 그나마 노래는 유일하게 내가 꾸준하게 할 수 있었고 지칠때마다 찾는 쉼터 같은 곳이었어요. 우연히 만난 실력있는 형들 틈에 끼어서 데뷔하게 되고 그 형들의 성공에 난 엉성한 실력으로 살짝 내 이름을 거기에 얹게 됩니다. 이렇게 운좋게 풀린 인생많은 사람들이 내 노래,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고 눈물 흘려주고… 웃어주고… 전 참 과분한 인생을 산 것 같습니다. 이렇게 행복한 제 인생을 더욱 더 살만하게 해준 내 가족들. 평생을 장애인들과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봉.. 느낌 아카이브 2023. 3. 22. 더보기 ›› 기어이 사랑이라고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은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김훈, 바다의 기별 /photo by Masahire Yochimi 느낌 아카이브 2023. 3. 22. 더보기 ›› 밤마다 헛발질하며 달려갈 테니 나에게도 멀리 있어 소중한 존재가 있다. 그 그리움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여, 그대는 앞으로도 한 천년 동안, 그토록 멀리 내 곁에 있어다오. 밤마다 헛발질하며 달려갈 테니. 1994년 봄, 윤대녕_작가의 말 느낌 아카이브 2023. 3. 22. 더보기 ›› 나는 변하지 못했고 사람들 틈에 끼인 살아 본 적 없는 생을 걷어 내고 싶었다. 모든 게 잘 보이게 다시 없이 선명하게 난 오늘 공중전화통을 붙잡고 모든 걸 다 고백한다. 죽이고 싶었고 사랑했고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는 성경 구절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그리고 오늘은 목요일. 죽이 끓든 밥이 끓든 나는 변하지 못했고 또 목요일. 형상이 없으면 그림이 아니야. 따귀 한 대에 침 한 번씩 뱉고 밤을 새우면 신을 만날 줄 알았지. 그림 같은 건 잊은 지 오래라는 녀석들 몇 명과 그들의 자존심과 그들의 투항과 술을 마신다. 그중에 내가 있다. 오늘은 목요일. 결국 오늘도 꿈이 피를 말린다. 그 꿈이 나한테 이럴 수가. -허연, 목요일. 느낌 아카이브 2023. 3. 22. 더보기 ›› 오직 사랑할 시간만이 시간이 없다. 인생은 짧기에, 다투고 사과하고 가슴앓이하고 해명을 요구할 시간이 없다. 오직 사랑할 시간만이 있을 뿐이며 그것은 말하자면 한순간이다. /마크 트웨인 /untitled - Thomas van der Zaag 느낌 아카이브 2023. 3. 22. 더보기 ›› 이상하게 되게 외로워져 나는 아무도 없는 편집실에 앉아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들어. 처음에는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나중에는 감정의 흐름을 지켜봐. 그럴때면 그들의 인생이란 이야기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이야기 사이의 공백에 있는 게 아닐까는 생각마저 들어. 그런데 편집은 목소리 사이의 공백을 없애는 일이잖아. 목소리와 목소리 사이에서 기침이나 한숨 소리, 침 삼키는 소리 같은 걸 찾아내서 없애는 거야. 그러면 이상하게 되게 외로워져. 그런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릴 테이프를 잘라내면 외로워진단 말이야. /김연수, 달로 간 코미디언 느낌 아카이브 2023. 3. 21. 더보기 ›› 왜 사냐는 질문 앞에 내가 늘 떠올린 장면 '왜 사냐'는 질문 앞에 내가 늘 떠올린 장면들은 한 여름 퇴근길에 올려다본 화려한 노을, 막 도착한 낯선 나라의 공항 문 밖 풍경, 그때 맡았던 찬 공기의 냄새, 땡볕도 마다않고 맛집 앞에 길게 줄 선 아저씨들, 꽃 선물을 받은 직후의 여자 친구 얼굴같은 것들이었다. 대개 이런 장면들은 당시에 내가 느꼈던 감정이나 맡았던 냄새, 느꼈던 기온 같은 것들과 하나로 묶여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떠올리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해진다. 사실 이런 장면들이 '왜 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어쩌면 이 질문 속 '왜'는 '어쩌다가'가 아니라 '무슨 힘으로'에 더 가까운 의미 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장면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모아두면, 언젠가 다시 "왜 사냐"는 질.. 느낌 아카이브 2023. 3. 21. 더보기 ›› 땅끝에서 등만 돌리니 다시 시작이었다 “그래서 끝으로 갔다. 생이 자꾸만 끝으로만 밀려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차라리 내가 자진해서 끝까지 가보자고 해서 땅끝으로 간것이었다. 땅끝에서 더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막바지에서 바다를 보았다. 그 바다가 너무 넓어 울었다. 해지는 바다가 너무 아파서 울었다. 다음날 아침 해 뜨는 바다를 보고 땅끝에서도 아침 해는 뜨는구나 하며 또 울었다. 그리고 밥을 먹었다. 모래알 같은 밥을 꾸역꾸역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땅끝에서 등만 돌리니 다시 시작이었다.” -최갑수,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Francisco Infante-Arana 느낌 아카이브 2023. 3. 21. 더보기 ›› 길게 보면 시간은 선생님 편이 돼줄 겁니다 그는 잠시 생각한 뒤에 말했다. “선생님은 무언가를 납득하는데 보통 사람보다 좀더 시간이 걸리는 유형 같아요. 하지만 길게 보면 시간은 선생님 편이 돼줄 겁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noeliaandres.tumblr.com 느낌 아카이브 2023. 3. 21. 더보기 ›› 인생의 말랑한 부분에 대한 일치 몇 평짜리 아파트에서, 무슨 차를 굴리고, 한 달에 얼마씩 저축해 몇 년 뒤에는 어떤 집에서 살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했지만, 정작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작가의 글에 열광하며, 어떤 상상을 할 때 가장 행복해지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듣지 못한 채로 결혼했다. 인생의 말랑한 부분에 대한 일치나 교감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인생의 하드웨어에 대해 합의를 본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었는지. / 곽정은 / 내 사람이다 느낌 아카이브 2023. 3. 21. 더보기 ››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