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아카이브90 결국은 이곳에 돌아와야 하는구나 그녀는 오랫동안 열 살 이전에 일어났던 일을 모조리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 내 인생은 실제로는 열 살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 이전의 일은 모두 비참한 꿈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기억은 어딘가에 내다 버리자.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걸핏하면 그녀의 마음은 그 비참한 꿈의 세계로 다시 끌려갔다.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그 어두운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에서 양분을 얻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먼 곳으로 가려도 해도 결국은 이곳에 돌아와야 하는구나, 하고 아오마메는 생각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1Q84 느낌 아카이브 2023. 11. 10. 더보기 ›› 외로움에 대하여, 얼마 전 친구와 술을 마시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친구가 외롭다는 말을 했다. “그거, 방금 내가 하려던 말이었어.” 내가 대답하자 친구가 깔깔대며 웃었다. 외롭다고 생각했다. 열세 살 때도, 열여덟 살 때도, 스물두 살 때도. 그리고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다는 걸,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깨닫고 있다. 십 대 때는 좋든 싫든 강제로 한 반에 묶여 있던 아이들, 거기를 벗어나도 어쨌거나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는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무나 잡고 고민을 털어놓아도, 대충 다 알아듣고 공감했다. 공부가 힘들고 담임이 싫고 꿈은 없고 놀고 싶고…. 그다지 넓지 않은 삶의 영역 안에 있는, 뭐 그런 얘기들이었으니까. 이십 대 초중반에는 아주 똑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별나지도 않은 경계에 모두가 걸쳐.. 느낌 아카이브 2023. 11. 9. 더보기 ›› 일요일 낮의 섹스 하나코는 모른다. 이 때 나는 확신했다. 한 남자와 인생을 공유할 때의, 흔해빠진 일상에서 길어올리는 행복,믿지 못할 기적같은 순간의 축적 예를 들면 겨울 아침, 다케오 옆에서 당연한 일이듯 눈을 뜨는 것. 차가운 발을, 건장하고 따스한 생명력에 넘치는 다케오의 발에 휘감을 때의 안심감. 뿌연 유리창.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몇 분. 예를 들면 역에서 거는 전화.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다케오의 목소리. 드러누워 열심히 추리소설을 읽고 있던 나는, 그 순간, 모든 것을 떠올린다. 만남에서 그때까지의 모든 것을. 예를 들면 일요일 낮의 섹스. 신나게 늦잠을 자고 깨났다가 몇 번이나 권태로운 섹스를 하고 그대로 잠들어버린다. 다시 눈을 뜨면 저녁이고, 둘 다 배가 고파 어쩔 줄 모른다. 그래서 동네 메밀국수 집.. 느낌 아카이브 2023. 11. 9. 더보기 ›› 이 계절의 부피 온다는 것이 동시에 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계절. 그리운 생각들과 날카로운 추억들이 서로 뒤섞이며 이 계절의 부피를 만든다. / 이광호, 사랑의 미래 Laurence Hervieu Gosselin 느낌 아카이브 2023. 11. 9. 더보기 ›› 손톱깎이 누군가 내게 “당신은 그를 얼마나 사랑하나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외면하며 “손톱만큼이요” 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돌아서서는, 잘라내도 잘라내도 평생 자라나고야 마는 내 손톱을 보고 마음이 저려 펑펑 울지도 모른다. -왕구슬, 손톱깎이 느낌 아카이브 2023. 11. 9. 더보기 ›› 그것들은 여전히 나와 몹시 다르고, 다양해서 이따금 경이로울 것이다 연애를 시작하면 한 여자의 취향과 지식, 그리고 많은 것이 함께 온다. 그녀가 좋아하는 식당과 먹어본 적 없는 이국적인 요리. 처음듣는 유럽의 어느 여가수나 선댄스의 영화. 그런걸 나는 알게된다. 그녀는 달리기 거리를 재 주는 새로 나온 앱이나 히키코모리 고교생에 관한 만화책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녀는 화분을 기를지도 모르고, 간단한 요리를 뚝딱 만들어 먹는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많은 나라를 여행해 보았거나 혹은 그녀의 아버지 때문에 의외로 송어를 낚는 법을 알고 있을수도 있다. 대학때 롯데리아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까닭에 프렌치후라이를 어떻게 튀기는지 알고 있을수도 있다, 그녀는 가족이 있다. 그녀의 직장에, 학교에는 내가 모르는 동료와 친구들이 있다. 나라면 만날 수 없었을, 혹은 애.. 느낌 아카이브 2023. 11. 9. 더보기 ››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간다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기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십만 번을 보더라도 에스키모는 여전히 물고기 두 마리를 낚은 채 계속 낚시를 하고 있을 것이고 새는 여전히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유일하게 달라지는 게 있다면 우리들일 것이다.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간다. (중략)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 저렇게 유리 진열장 속에 가만히 넣어 두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건 잘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Alfredo Jaar - Um milhão de pontos de luz, 2005 느낌 아카이브 2023. 11. 9. 더보기 ›› 당신은 온 적이 없는데, 창문을 열어뒀다 “바람이 불면, 자꾸 온기에 기대고 싶어진다. 아직 최선으로 사는 법은 모르겠고, 함부로 간직하면 안 되는 것과 그런데도 남몰래 와서 내 것이 되는 것이 있었다. 당신은 준 적이 없는데, 주머니가 불어났다. 당신은 온 적이 없는데, 창문을 열어뒀다.” 트위터 @AFTER_JAN 느낌 아카이브 2023. 4. 7. 더보기 ›› 너무 긴 이별이다 편지 S에게 나는 아직도 우리가 왜 헤어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너한테 물어보고 싶지만 너 역시 나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사랑하고 이별하는 일은 우리와는 별 상관 없이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의지와 별개로 벌어지는 일들이 세상에는 있는 법이니까 우리는 너무 빨리 만났거나 혹은 너무 늦게 만난 것일 수고 있고 너무 빨리 마음을 열었거나 혹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너무 서툴러 헤어져버린 것일 수도 있다 오늘은 밤새도록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잠들기 전에 창문을 꼭 닫고 자도록 해 언젠가 비 오는 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다가 온 집 안을 물바다로 만든 일도 있었잖아 너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참 이상한 여자다 생각했는.. 느낌 아카이브 2023. 4. 7. 더보기 ››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느냐고 그 잔을 비우면 당신은 돌아가겠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느냐고 나는 묻지도 못하는데 -황경신, 빈잔 느낌 아카이브 2023. 4. 7. 더보기 ›› 타자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는 해방된 힘 오랫동안 모든것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했었다. 이젠 삶에 대해 좀 덤덤해지고 싶다. 새로운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에 잠시 머무는 것들, 그것에 다정해지고 싶다. 민감하기 보다는 사려깊게 좀 더 특별하고도 편안하게 그래서 내면의 미소를 잃지 않는 균형감각과 타자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는 해방된 힘을 갖고 싶다. - 검은 설탕이 녹는동안, 전경린 느낌 아카이브 2023. 4. 7. 더보기 ›› 아직도 사랑해서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프다 - 나태주 / 이 가을에 - Alicja Atomova 느낌 아카이브 2023. 4. 7. 더보기 ›› 그 안에 나의 어떤 이기심 “살면서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왜 이런 실수를 했지, 왜 나한테 이런일이 일어났지 하고 생각할 때가 많잖아요. 저는 늘 그런 것들을 내 문제로 보지 않고 타자화시켰고, 외부에서 이유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니까 나한테 일어난 모든 일은 사실은 그 안에 나의 어떤 이기심, 나의 어떤 바보스러운 욕망, 나의 어떤 알량한 자존심, 이런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작용되고 개입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된 것이 결국 나의 자존심 때문이었던거야? 또는 ‘나의 개인적인 욕망 때문이었던 거야?’하는 결론이 서면 내 바보스러운 모습과 만나지는 거니까 그런 걸 꺼내놓기 싫었던 거고, 그런 모습이 나란 걸 인정하기 싫었던 거죠. 다치니까요.” 감독, 열정을 말하다 / 지승호 인.. 느낌 아카이브 2023. 4. 7. 더보기 ›› 그때 붙잡고 싶었던 것은 네가 아닌 그 순간이었다 그때 붙잡고 싶었던 것은 네가 아닌 그 순간이었다. 당신도 그렇게 왔다 가는 걸까 어느 순간 기척 없이 빠져나간 손바닥의 온기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의 그늘처럼, 이미 예정된 한순간 속의 우리들. -이향 한순간 느낌 아카이브 2023. 4. 7. 더보기 ›› 안녕이란 말도 없이 우리는 헤어졌다 내가 밤일 때 그는 낮이었다 그가 낮일 때 나는 캄캄한 밤이었다 그것이 우리 죄의 전부였지 나의 아침이 너의 밤을 용서 못하고 너의 밤이 나의 오후를 참지 못하고 안녕이란 말도 없이 우리는 헤어졌다 피로를 모르는 젊은 태양에 눈멀어 제 몸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맨발로 선 창가를 서성이며 백야의 황혼을 잡으려 했다 내 마음 한켠에 외로이 떠 있던 백조는 여름이 지나도 떠나지 않고 기다리지 않아도 꽃이 피고 꽃이 지고 그리고 가을, 그리고 겨울 곁에 두고도 가고 오지 못했던 너와 나, 면벽한 두 세상 / 최영미, 사랑의 시차. / Poisoned marigold flowers, Kanpur, India, 2014. 느낌 아카이브 2023. 4. 7. 더보기 ›› 내 상처와 흉터를 마주하면서 나는 내가 생각하던 사람이 전혀 아니었음을 마침내 인정하면 검은 수렁에 빠져들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내 상처와 흉터를 마주하면서 도리어 내가 더욱 강해진다는 걸 문득 깨달았습니다. (파울로 코엘료, 스파이) 느낌 아카이브 2023. 4. 7. 더보기 ›› 지금 필연적으로 해야 할 것들을 미리 안다면 "지금 나의 생은 너무 사소해서 이걸 하든 저걸 하든 뭔가를 하든 아무것도 하지 않든 차이가 없다. 하지만 나중엔 차이가 있겠지. 지금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에 의한 아주 큰 차이. 나중엔. 그걸 지금 알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필연적으로 해야 할 것들을 미리 안다면, 이렇게 막막하지는 않을 것이다" / 전경린, 나비 느낌 아카이브 2023. 4. 7. 더보기 ›› 나는 영원히 맞춰지지 않는 그림자의 저녁 평화는 평화롭지 않잖아. 벼랑이 없는 평화 속에서는 맨드라미도 피지 않는다는 거 알잖아. 누군가 평화로웠다면 그것은 불안했기 때문이야. 평화는 곧 끝장날 때만 평화로운 거잖아. 내 몸에 새겨진 당신을 오려내면 당신보다 많은 내가 잘려나가 두 시의 태양이 없이도 저녁은 오지. 태양을 물고 사라진 계절에 대해, 당신이 적선하듯 던져주었던 오후 두 시의 태양에 대해, 이름을 잊은 퍼즐조각. 나는 영원히 맞춰지지 않는 그림자의 저녁 /이승희, 쫌 쫌 쫌 /Erin Whittier 느낌 아카이브 2023. 4. 7. 더보기 ›› 우리가 젊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그런 밤이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우리가 젊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그런 밤이었다. -도스토옙스키, 백야 -Photo by Sven Scheuermeier 느낌 아카이브 2023. 4. 7. 더보기 ›› 사사로운 일들이 잔 물결처럼 밀려와도 사사로운 일들이 잔물결처럼 밀려와도 그것은 잔물결일 뿐. 모두들 그러하듯 견딜 수 있다. -홍설 치즈인더트랩 느낌 아카이브 2023. 4. 1. 더보기 ›› 이전 1 2 3 4 5 다음